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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20-07-20 11: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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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랑 중 가장 변함없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족 간의 사랑이 아닐까. 특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을 할 정도로 각별하다. 하지만 이 말들이 무색한 ‘나쁜 아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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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12년 간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강서영(가명)씨와 세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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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12년 간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강서영(가명)씨와 세자매.

 

강서영(가명·48세)씨는 남편 주병욱(가명·47세)씨와 결혼 생활 중 경제적 무능력, 외도. 도박 등을 참지 못하고 12년 전 이혼을 했다.

두 사람은 ‘님’에서 ‘남’이 되었지만 그저 ‘남’이 될 수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안아플 13살, 10살, 4살이 된 세 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혼 당시 법원은 남편 주 씨를 유책배우자로 인정했고 세 딸의 친권과 양육권을 강 씨에게 주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한 아이당 40만원, 총 120만원의 양육비를 매달 말일에 지급하도록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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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양육비 지급을 위해 전남편에게 연락을 하지만 '돈이 없다', '다음에 주겠다'며 계속 미루고 있다.

 

하지만 강 씨는 이혼 후 현재까지 한 번도 제대로 된 양육비를 받아 본 적이 없다.

전남편은 강 씨가 하루 3시간씩 쪽잠 자며 일을 해 세 자매를 양육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가진 돈이 없다’며 양육비 지급을 미뤘다. 그렇게 밀린 양육비가 1억원 가까이다. 

돈이 없다며 양육비를 주지 않던 전남편은 그사이 재혼을 했고 그 가정에서 두 딸을 양육하고 있다. 

천륜은 끊을 수 없는 것이라는데 전남편 주 씨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다섯명의 딸들 중 강씨가 양육 중인 세 자매에게는 12년 동안 얼굴을 보러 온 적도 없고 연락도 하지 않는 등 철저히 외면했기 때문이다. 

친부의 외면과 양육비를 주지 않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세자매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매일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강 씨가 있었다.

강 씨는 이번 인터뷰와 촬영에 응하면서 “인터뷰 출연까지 고민이 많았는데 양육자들이 얼마나 힘들 게 사는 지 현실적인 문제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양육비에는 오로지 우리 아이들의 꿈이 담겨 있고 그렇기에 양육비 미지급이 아동학대라는 점을 전달하고 싶어 용기 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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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 지급을 촉구하기 위해 용기를 낸 강서영(가명)씨가 전남편의 집 앞에서 첫 시위를 하고 있다.

 

# 양육비만 줬어도...

“솔직히 이혼 하고 나서 애들을 남편한테 두고 올까 생각도 했어요. 경제적 형편이 너무 어려웠거든요. 결혼 생활할 때 전남편이 제 명의로 카드를 만들고 대금을 못 갚아서 신용불량자가 된 상태였어요. 

그래서 큰 애하고 둘째한테 ‘엄마 조금만 돈 벌다 데리러 올게’ 하니까 울면서 같이 가자고 잡더라고요. 애들이 엄마하고 살아야 한다는 걸 눈치로라도 알았나봐요. 아빠가 애들 태어나고 기저귀 한 번 갈아준 적 없고 안아준 적도 없었거든요. 

끝까지 저 따라가겠다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까지 다 데리고 나왔어요. 어차피 거기서 죽으나 나하고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장 돈을 벌어야 했는데 신용불량자가 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때 용접하면 돈을 잘 번다는 얘기를 듣고 조선소에 들어갔어요. 저는 히팅직을 맡았는데 사다리 타고 8층 높이에 올라가요. 그 일이 정말 저하고 맞지 않더라고요. 그만 두고 싶었어요. 여기서 떨어지면 그날로 죽는데 싶고..

하지만 애들 생각하면 못 그만두겠고 미치겠더라고요. 피눈물 흘리면서 일했어요. 

7개월 정도 다니다 주변에서 애들이 어리고 일이 위험하니 괜찮은 자리가 있다고 조선소 안에 용접기 수리반을 소개시켜줬는데 월급이 많지 않았어요. 100만원 조금 넘게 받았는데 그걸로 애 셋을 어떻게 키우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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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강서영(가명)씨가 자식들 양육을 위해 퇴근을 하고도 집에서 부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매일 오후 7시 퇴근하면 8시부터 새벽 1,2시까지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아르바이트 끝나고 한 3,4시간 잤다가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또 출근하고..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일 해도 총 수입이 250만원도 안됐어요.

전남편이 떠넘긴 빚 나가야죠, 월세 나가야죠, 애들 키워야죠. 나가는 건 배예요. 결국에는 또 빚 써서 매꿨죠. 그 사람이 나한테 양육비만 줬어도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라는 생각 항상 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양육비 좀 달라고 전남편에게 전화도 여러 번 했는데 ‘니 돈 벌잖아’ 그러고 안주더라고요.

새벽 3시에 지쳐서 집에 가면 베란다 구석에서 혼자 술 마시고 자고 그랬어요. 그때 참 많이 울었어요. 솔직히 애들 놔두고 죽을까 생각도 했고, 애들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한데 우리 여기서 생을 마감하는 게 나을까 싶어서 넷 다 같이 죽을까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애들 자는 모습 보면 또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애들 잘 때가 제일 맑고 예쁘잖아요. 그 모습 보면서 버텼어요.

이제는 첫째와 둘째가 성인이 돼서 첫째는 직장을 다니고 둘째는 대학교를 다녀요. 막내는 아직 중학생인데 하고 싶은 게 많데요. 아직 아이들이 공부 중이라 돈이 많이 들어가요. 당장은 내가 아르바이트 더 하면 되지 싶다가도 몸이 성한 곳이 없어서 집에서 틈틈이 부업을 하고 있어요.

지금도 아이들 아빠한테 양육비를 보내달라고 연락하는데 다음에 준다면서 계속 미뤄요. 하다못해 양육비를 깎자고 흥정까지 해요.

# 엄마가 미안해 

“제일 아픈 손가락은 막내예요. 막내는 4살 이후로 제 손으로 옷 한 번 제대로 입힌 적 없고 목욕 한 번 제대로 시킨 적 없어요. 첫째랑 둘째가 늘 막내를 돌봤죠.

첫째가 6학년 때였어요. 저한테 “엄마는 재혼 안 해?”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엄마는 재혼 안해” 그러니까 제가 재혼을 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이유를 물으니 자기랑 둘째는 싫으나 좋으나 아빠를 겪어 봤지만 막내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아빠에 대한 기억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데요. 그래서 제가 재혼을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길 하더라고요. 막내는 태어난 후로 ‘아빠’ 소리를 제대로 해 본적이 없거든요. 

전남편도 막내가 4살 때 떨어져서 눈에 밟힐 법도 한데 양육비 달라고 전화 하면 애 안부는커녕 이름 한 번 언급한 적 없어요. 아마 서로 길에서 마주쳐도 못 알아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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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영(가명)씨 둘째딸 돌사진.

 

지금도 생각하면 제일 눈물 나는 일이 저는 어릴 때 형편이 어렵다고 돌잔치도 못하고 돌사진도 못찍었거든요. 그게 한이 돼서 우리 애들 돌사진은 꼭 찍어주자 생각해서 큰애하고 둘째는 찍었어요.

하지만 막내 때는 축하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사진은 찍지도 못하고 방 한구석에 물이랑 떡 하나 놓고 혼자 삼신할매한테 기도만 올렸어요.

잊고 지내다 막내가 어린이집 다닐 때 ‘엄마 나 돌사진 가지고 오래’ 그러더라고요. 당황했죠. 사진이 없잖아요. 그래서 애들이 다 비슷하니까 ‘이거 네 거야’하고 언니 사진을 떼다 줬었어요. 

지금은 자기들끼리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저는 아직도 그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고 눈물이 나요. 

첫째랑 둘째는 내가 공부 뒷바라지 못한 게 제일 아쉽더라고요. 괜히 잘못 태어나서 고생만 하는 거 같고 ‘나 아니면 더 좋은데 갔을텐데..’ 항상 그러거든요. 자기들이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잖아요. 상처받는 건 애들인데...

전남편을 보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싶고 너무 괘씸해요. 아무리 제가 싫어도 아이들은 자기 자식들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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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영(가명)씨 둘째딸  주민하(가명·21세) 씨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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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영(가명)씨 둘째딸  주민하(가명·21세) 씨의 인터뷰

 

#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아빠에게

첫째 딸 주인경(가명·24세)둘째 딸 주민하(가명·21세)의 인터뷰를 묶었습니다.
“어릴 때 학원 다니는 애들 보면 부러웠어요. 나도 다니고 싶은데 엄마한테 부탁을 못하겠는 거예요. 엄마가 얼마나 힘든 지 아니까. 

양육비를 제대로 보내줬더라면 남들 다 하는 거까진 못해도 저희가 하고 싶은 걸 조금씩 배우고 내 주관도 펼칠 수 있었을 거예요. 

돈이 없어서 양육비를 보내지 못했다고 하는데 저는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주말마다 10시간씩 뷔페에서 알바를 했어요. 그렇게 일하면 한 달에 3,40만원은 벌어요.(한 아이당 양육비 금액이 40만원이다.) 

그런데 성인이 어떻게 돈이 없는 지 의문이에요. 그 사람은 먹을 거 다 먹고 입을 거 다 입고 의식주를 생활하면서 보내줄 돈이 없다는 말하는 건 핑계죠. (딸들은 아빠를 그사람이라고 불렀다)

돈이 없어서 양육비를 지금까지 못 보낼 거면 돈 없는데 결혼해서 자식을 또 어떻게 낳았는 지 묻고 싶어요.

그동안 엄마가 우리를 키우면서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겠어요.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었어요.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우울증도 걸리고 근데도 불구하고 일은 계속하고 돈은 계속 벌어야 되잖아요. 

그 생각하면 아빠라는 사람한테 너무 화가 나요. 이렇게 낳아서 버리고 갈 거면 낳지를 말든가.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미안하면 이제서라도 천천히 양육비를 보내줬으면 좋겠어요. 한꺼번에 보내달라는 것도 아니고 조금씩이라도 보내줬으면 좋겠어요.

막내도 아직 학교를 다니고 저 역시 지금까지 하고 싶었던 거 다 참다가 이제라도 시작 해볼까 하는데 그 시작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줬으면 좋겠어요. 

 

 

출처 - 울산매일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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